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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치평가는 왜, 언제 필요한가 - 거래/세무/회계 등 7가지 상황

플럭사플로 2026. 9. 8. 12:53

기업가치평가란 : 같은 집에 값이 여러 개인 이유

기업가치평가를 비유하자면 집 한 채에 붙는 여러 개의 값에 가깝습니다.

같은 아파트라도 값을 묻는 사람에 따라 답이 다릅니다. 팔려고 내놓으면 이웃의 거래가가 기준이 되고, 세금을 매길 때는 과세용으로 정해 둔 값이 따로 있고, 은행은 담보로 잡을 때 자기 기준으로 다시 봅니다. 옆집과 합쳐 건물을 올리려는 사람에게는 시세보다 더 값어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집은 하나인데 값은 넷입니다. 어느 하나가 틀린 것이 아니라, 묻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기업가치평가(밸류에이션)는 목적과 시점을 정해 놓고 회사 전체 또는 그 지분의 경제적 가치를 화폐 단위로 산정하는 일입니다. "이 회사를 100억원에 사는 게 비싼 걸까"에 답하려면 먼저 "누구를 위한, 무슨 목적의 100억원인가"부터 정해야 합니다. 국제가치평가기준(IVS) 104는 이 전제를 가치 기준(Bases of Value)이라 부르고 세 가지로 나눕니다(IVS 104 원문).

  • 시장가치(Market Value) — 서로 정보를 갖고 자발적으로 거래하는 매수자와 매도자 사이에서 성립할 가격. 특정인의 사정을 배제한 값
  • 투자가치(Investment Value) — 특정 투자자의 관점에서 본 가치. 인수 후 시너지처럼 그 투자자에게만 생기는 효익을 반영
  • 공정가치(Equitable Value) — 특정 당사자 사이에서 양쪽의 이해를 반영해 합의된 공평한 가격. 회계기준의 공정가치와 혼동을 피하려고 2017년부터 영문 명칭을 Equitable Value로 바꿨습니다.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 제1113호의 공정가치(Fair Value)는 "측정일에 시장참여자 사이의 정상거래에서 받거나 지급하게 될 가격"으로, 이름과 달리 IVS의 시장가치에 가깝습니다

같은 회사에 여러 가치가 있는 것은 계산이 틀려서가 아니라 가치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인수자의 투자가치와 세무서의 시장가치는 애초에 다른 질문에 답합니다.

 

 

투자용 밸류에이션과 세무용 비상장주식 평가 : 시가가 있으면 시가가 이긴다

국내 실무에서 비상장회사의 가치는 크게 두 갈래로 산정됩니다. 투자유치나 M&A를 위한 투자용 밸류에이션은 미래 성장성을 반영한 협상가치이고, 상속·증여·스톡옵션 과세를 위한 세무용 평가는 과세 시점의 객관적 기준입니다. 같은 회사가 시리즈 A에서 인정받은 값과 증여세 신고서에 적히는 값이 다른 것은 이 때문입니다.

 

세무용 평가의 순서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60조가 정합니다. 실제 거래가 있으면 그 매매사례가액이 시가가 되고, 시가를 확인할 수 없을 때만 법정 산식인 보충적 평가방법을 씁니다. "시가가 확인되면 시가가 이기고, 모를 때만 산식을 쓴다"고 기억하면 됩니다. 보충적 평가방법은 같은 법 시행령 제54조에 있습니다.

  • 가중평균 — 1주당 순손익가치와 순자산가치를 3:2로 가중평균합니다(부동산과다보유법인은 2:3)
  • 하한 — 그 값이 순자산가치의 80%에 못 미치면 80%를 하한으로 적용합니다
  • 순자산가치만 쓰는 경우 — 청산 중, 설립 3년 미만, 휴·폐업, 부동산·주식 자산비율 80% 이상 등 6가지 사유에 해당하면 순자산가치만으로 평가합니다. 설립 초기의 적자 스타트업이 흔히 해당합니다
  • 최대주주 할증 — 최대주주 등의 주식은 원칙적으로 20%(지분 50% 초과 시 30%)를 할증합니다. 중소기업은 제외되고, 2026년 1월 1일 이후 개시 상속·증여분부터는 직전 3개년 평균 매출 5천억원 미만 중견기업도 제외됩니다. 2026-09-08 기준 확인한 범위에서 할증 제도는 유지되고 있습니다

투자용 밸류에이션에는 이런 산식이 없습니다. 어떤 방법론과 가정을 쓸지는 협상 당사자들이 각자 개별적으로 판단합니다.

 

법이 강제하는 평가와 협상용 평가 : 합병·상속증여·K-IFRS·회생 vs 투자유치·M&A

평가가 필요한 상황을 나누는 가장 실용적인 기준은 방법론이 아니라 "법이 평가를 요구하는가, 아니면 상대방이 요구하는가"입니다.

법이 강제하는 경우

  • 상장법인 합병 —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76조의5는 2024년 11월 개정으로 규율을 둘로 나눴습니다. 계열회사 간 합병은 기준시가 ±10%(스팩 합병은 ±30%)의 법정 산식을 유지하고 외부평가와 감사(감사위원회) 동의를 의무화했습니다. 비계열회사 간 합병은 산식에서 제외해 자율 교섭에 맡기되 외부평가는 똑같이 의무입니다. 자율화된 쪽은 비계열사이고, 계열사 쪽은 오히려 강화됐습니다
  • 합병 반대주주의 매수청구 — 상장법인은 같은 시행령 제176조의7 제3항의 법정 산식으로 가격이 정해집니다. 비상장법인에는 산식이 없어 법원이 정하며, 대법원 2005마958 결정은 거래사례가 있으면 그 가격을, 없으면 시장가치·순자산가치·수익가치를 종합해 반영비율을 정하라는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 상속·증여 — 앞서 본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60조·제63조와 시행령 제54조. 납세자가 직접 산정하지만 산식 자체는 법률에 따름니다
  • K-IFRS 결산 — 외부감사 대상 법인이 회사를 인수하면 제1103호(사업결합)에 따라 취득한 자산·부채를 공정가치로 다시 재고, 매수대가와의 차액을 영업권으로 인식합니다(PPA). 제1109호 도입 이후에는 보유 중인 비상장 지분증권도 원칙적으로 공정가치로 측정해야 합니다
  • 회생절차 —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 따라 법원이 선임한 조사위원(회계법인)이 계속기업가치(DCF)와 청산가치를 비교합니다. 계속기업가치가 더 크다고 인정돼야 법원이 관리인에게 회생계획안 제출을 명합니다

협상용인 경우

  • 투자유치 — 프리머니·포스트머니는 투자자와 창업자가 정합니다. 법정 산식도 외부평가 의무도 없습니다
  • 비상장 M&A — 인수자와 매도자가 각자 재무모델을 만들어 부딪히는 자리입니다. 다만 인수 뒤 결산 단계에서는 위의 K-IFRS 의무가 따라옵니다

협상용이라고 해서 평가가 가벼운 것은 아닙니다. 협상으로 정한 값은 실제 거래가로 남아, 이후 세무 평가에서 매매사례가액으로 참조될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 CFO의 1년 : 시리즈 A, 스톡옵션, RCPS, 증여

법정과 협상의 구분이 실무에서 어떻게 섞이는지는 스타트업 CFO의 1년을 따라가 보면 보입니다. 계산은 뒤 회차로 미루고, "왜 이 시점에 평가가 필요한가"만 짚습니다.

  • 1분기, 시리즈 A 협상 — 포스트머니는 프리머니에 신규 투자금을 더한 값입니다. 국내 초기 투자는 주로 전환사채(CB)와 상환전환우선주(RCPS)로 이뤄지는데, 앞 라운드 CB의 전환가나 RCPS의 발행가가 이번 라운드 가격의 기준선처럼 작동하는 경우가 실무적으로 많습니다. 그보다 낮게 정하면 리픽싱 조항으로 기존 투자자의 전환가까지 함께 내려가 창업자 희석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법정 의무가 없는 순수한 협상입니다.
  • 2분기, 스톡옵션 행사가 —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법(시행령 제11조의3)의 시가 이하 발행 요건을 쓰려면 먼저 "시가"를 확정해야 합니다. 시가는 매매사례가액이 우선이고 없으면 보충적 평가방법인데, 잘못 잡으면 가산세 위험이 있어 회계법인에 평가를 의뢰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시가 이하 부여의 1인당 한도는 5억원에서 20억원으로 늘어 2026년 1월부터 시행됐습니다.
  • 3분기, RCPS 재평가 — 상환전환우선주(RCPS)는 K-IFRS에서 상환권을 투자자가 갖고 리픽싱 조항이 붙어 있으면 부채로 분류돼 매 보고기간 공정가치로 다시 재야 합니다. 투자 유치 때는 협상이었던 값이 결산에서는 의무가 되는 순간입니다.
  • 4분기, 증여 — 창업자가 자녀에게 지분을 넘기는 순간 값을 묻는 상대는 투자자가 아니라 세무서로 바뀝니다. 협상으로 정할 여지는 없고, 최근 실제 거래가가 있으면 그 값이, 없으면 법정 산식인 보충적 평가방법이 증여세의 기준이 됩니다. 최대주주 지분이면 할증이 붙을 수 있고, 가업승계 관련 공제 요건은 세법 개정으로 자주 바뀌므로 증여 시점의 규정을 세무 전문가와 함께 확인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한눈에 보는 매트릭스 : 내 상황은 누가, 의무로 평가하나

상황 대표 예시 평가 주체 의무 여부 근거
A. 거래(M&A·합병·투자유치) 상장법인 계열사 간 합병 / 시리즈 A 투자유치 외부평가기관(합병) / 투자자·창업자 협상(투자유치) 합병: 법적 의무 / 투자유치: 의무 없음 자본시장법 시행령 제176조의5
B. 세무(상속·증여·가업승계) 창업자가 자녀에게 비상장주식 증여 납세자·세무대리인 자체 산정 법적 의무(산식)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60조·제63조, 시행령 제54조
C. 재무보고(K-IFRS 결산) 스타트업 인수 후 PPA, RCPS 분기 재평가 회계법인 또는 내부 평가 + 감사인 검토 법적 의무(외부감사 대상 법인) K-IFRS 제1103호·제1109호·제1113호
D. 분쟁(주주간·소송) 비상장 계열사 소수주주의 매수청구권 행사 법원 선임 감정인(비상장) / 시행령 산식(상장) 상장: 법적 의무(산식) / 비상장: 법원 개입 시 의무 자본시장법 시행령 제176조의7, 대법원 2005마958
E. 자금조달·구조조정 유동성 위기 기업의 회생 신청 조사위원(회계법인), 법원 법적 의무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F. 내부경영(지주회사 전환 등) 대기업의 사업부문 물적분할 회사 자체 산정(필요시 회계법인 자문) 의무 없음(적격분할 세법 요건 심사는 별도) 세법상 적격분할 요건
G. IPO·상장 적자 바이오·딥테크의 코스닥 기술특례상장 대표주관 증권사(공모가) + 지정 전문평가기관 법적 의무 증권신고서 심사, 거래소 상장규정

 

자기 상황을 찾을 때는 세 가지만 생각해 보면 됩니다. 지금 우리 회사 값을 묻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 사람이 법으로 정해진 방식대로 평가하라고 요구하는지, 그리고 그렇게 나온 숫자가 나중에 어디에 쓰이는지 입니다. 투자자가 물을 때와 세무서가 물을 때 가격이 다르다고 해서 어느 한쪽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집 한 채에 값이 여러 개였던 것처럼,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