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모델이란
재무모델에 대해서 비유를 들자면 비행 시뮬레이터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종사는 실제 비행 전에 시뮬레이터에서 안정적인 비행을 위해 어떻게 운항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엔진 정지나 연료 부족 상황 등 이례적인 상황들을 시뮬레이션 해보면서 대처 방안을 미리 고민해 볼 수 있습니다.
재무모델은 회사를 위한 시뮬레이터입니다.
회사는 실제로 돈을 쓰기 전에 "이렇게 하면 회사의 손익과 자금 흐름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미리 계산해 봅니다.
회사 전체의 손익과 현금흐름에 대해 고민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고, 특정 사업에 한정적으로 수익성과 현금흐름을 추정하기 위해서 사용하기도 합니다.
- 광고비를 두 배로 늘리면 향후 3년간 이익은 어떻게 변할까?
- 지금 속도로 돈을 쓰면 통장 잔고는 언제 바닥날까?
- 이 회사를 100억원에 사는 게 비싼 걸까, 싼 걸까?
이런 회사 경영을 위한 다양한 질문들에 감이 아니라 숫자로 답하는 게 재무모델의 일입니다.
실물은 대개 거창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복잡한 수식들로 촘촘하게 엮인 엑셀 파일 하나입니다.
어떻게 생겼나 : 3층 구조
잘 만든 재무모델은 기본적으로 아래 세 개의 층으로 구성됩니다.
이러한 구분이 제대로 설정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고 재사용성이 크게 떨어져서, 조금만 모델이 커져도 쓸모 없는 숫자 덩어리가 되기 십상입니다.
1층 - 가정(Assumption)
- 사람이 직접 입력하는 값. 월 신규 고객 수, 객단가, 이탈률, 인건비 상승률, 임대료 같은 것들
- 모델에서 유일하게 손으로 숫자를 넣는 곳
2층 - 계산(Calculation)
- 가정 값들을 받아 수식으로 굴러가는 부분. "매출 = 고객 수 x 객단가", "인건비 = 인원 x 평균급여" 등
- 계산 Sheet에는 가정 값이나 Raw Data를 직접 입력하지 않고, 반드시 1층의 가정 Sheet를 참조하도록 구성해야 합니다.
3층 - 결과(Output)
- 계산 결과들을 모아서 손익계산서, 재무상태표, 현금흐름표 등으로 정리됩니다.
- 각각 "얼마를 벌었나", "무엇을 갖고 있나", "실제 현금은 어떻게 움직였나"에 답합니다.
- 목적에 따라 여기에 기업가치 평가(DCF), 투자 회수 지표(IRR, 회수기간), 손익분기점 같은 항목이 추가됩니다. 앞서 던진 "이 회사를 100억원에 사는 게 비싼 걸까"라는 질문은 재무제표가 아니라 이 영역에서 답이 나옵니다.
중요한 것은 1층 값만 바꾸면 2층, 3층의 결과는 자동으로 바뀌도록 구성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가정, 계산, 결과를 잘 구분해서 구현을 시작하지만, 모델이 커지게 되면서 계산 시트에 가정 값을 직접 입력하거나 결과 시트에 주요한 계산들을 넣어서 작성하는 경우가 쉽게 발생합니다. 결국 이 3층 구조를 끝까지 지켜내는 것이 모델의 수명을 결정하는데, 이를 위한 구체적인 규칙은 뒤의 '잘 만든 모델의 조건'에서 다루겠습니다.
무엇을 할 수 있나 : 시나리오와 민감도
3층 구조를 지켜서 모델을 만들면, 1층의 가정 값을 바꾸는 것만으로 회사의 미래를 여러 버전으로 그려볼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재무모델을 만드는 실질적인 이유입니다.
시나리오 분석
- 낙관 / 기본 / 비관 세 가지 버전을 만들어 나란히 놓고 비교합니다.
- "광고비를 두 배로 늘리면 3년 뒤 이익은 어떻게 될까", "최악의 경우에도 우리가 버틸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에 답하는 방식입니다.
민감도 분석
- 가정 값 하나를 위아래로 흔들어보면서, 결과가 얼마나 크게 변하는지를 확인합니다.
- 이 작업을 해보면 대부분 "우리 사업의 실적은 사실 이 몇 개의 변수에 거의 다 달려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나머지 수십 개의 가정은 아무리 바꿔도 결과가 거의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재무모델은 미래의 숫자를 하나로 확정하는 도구가 아니라, 회사의 실적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가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도구에 가깝습니다.
실무에서 어떻게 사용되나
스타트업 - 런웨이 관리와 투자 유치
- "지금 보유한 현금으로 몇 개월 버틸 수 있을까(런웨이)?", "채용을 두 달 미루면 런웨이가 몇 개월 늘어날까?" 등 런웨이 체크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재무모델을 업데이트 합니다.
- 투자 유치시 회사의 성장성을 보여주는 목적으로 재무모델을 작성합니다. 반대로 투자자 입장에서는 회사에서 제시하는 수치가 적절한지 판단하는 목적으로 별도의 재무모델을 작성합니다.
사업기획 - 신규 사업 타당성 검토
- 신규 사업, 신제품 출시, 신규 국가 진출을 검토할 때 초기 투자금, 회수 기간, 손익분기점을 따집니다.
- "3년 안에 회수가 될까?", "구체적으로 발생하는 비용들을 모두 고려했을 때 수익이 발생할까?" 등의 질문에 답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됩니다.
재무팀 - 예산과 자금 계획
- 연간 예산 수립, 월별 자금 수지 예측, 대출 상환 계획 등도 크게는 재무모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실무적인 한계로 파편화된 엑셀들로 이러한 내용들을 관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재무 현황을 파악하고, 경영자의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구체적인 재무모델을 구현해서 관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투자/M&A - 기업 또는 사업의 가치 평가
- 인수 대상 회사의 과거 실적 등을 토대로 향후 수익과 비용 등을 추정하여 적정 인수가를 산출합니다. 인수 이후에 두 회사의 시너지까지 고려해서 재무모델을 만들고, 숫자로 검증합니다.
- 매각하는 회사는 인수자를 설득하기 위한 목적으로 재무모델을 만들고, 인수하는 회사는 내가 적절한 가격에 인수하는 걸까 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재무모델을 만듭니다.
재무모델은 창이 되면서 동시에 방패가 됩니다. 투자 또는 사업예산을 받아야 하는 조직에서는 재무모델을 작성하여 왜 이 사업이 수익성이 있는지를 설명합니다. 투자를 실행하는 조직에서는 별도로 재무모델을 통해서 사업의 리스크와 상대방이 주장하는 수익성이 적절한지 등을 검토합니다.
잘 만든 모델의 조건
| 가정은 한 시트에 모은다. | 시트 여기저기 흩어진 가정값들은 사고를 부릅니다. 가정이 한곳에 모여 있어야 시나리오를 바꿔보는 것도 가능해집니다. |
| 수식 안에 숫자를 직접 넣지 않는다. | =B5 * 1.1이 아니라 =B5 * (1 + 가정!C3)나중에 왜 1.1이었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
| 입력값과 수식을 색으로 구분한다. | 실무 관행은 아래와 같습니다. · 파란색 : 직접 입력한 가정값 · 검정색 : 해당 시트 내에서 계산되는 수식 · 초록색(선택적) : 다른 시트를 참조하는 수식 색만 봐도 어디를 건드리면 되는지 바로 보입니다. |
| 검산 항목을 넣는다. | 가장 기본은 재무상태표의 "자산 = 부채 + 자본"이 일치하는지 자동으로 확인하는 셀입니다. 이런 검산 셀 하나가 큰 사고를 막아줍니다. |
마지막으로, 흔한 오해 하나
재무모델의 목적은 미래를 맞히는 것이 아닙니다. 정확한 예측은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중요한 목적은 의사결정의 구조를 드러내는 것 입니다. 이 사업이 어떤 요소들에 의해 좌우되는지, 어느 수준까지 버틸 수 있는지, 어떤 조건이 무너지면 계획이 깨지는지를 보이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사결정 구조로서의 재무모델은 회사 경영진과 주요 임직원들에게 의사결정의 기준이 되고, 의사소통의 언어로서 작동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무모델로 만들어지는 최종적인 숫자 그 자체에 얽매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재무모델을 구현해내는 과정 속에서 "우리 사업은 결국 이 세 개의 변수로 설명된다"는 깨달음과 같은 사업의 본질적인 요소를 이끌어내고, 그에 대한 구성원들간의 공감을 만들어 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